천 판사는 정군에게 "축구할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천 판사는 2016년 '만사소년 FC'라는 축구팀을 만들었다. 그가 일을 돕던 위기청소년 지원 재단인 '만사소년(萬事少年)' 이름을 땄다. '모든 일은 소년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정군은 현재 만사소년 FC의 왼쪽 공격수를 맡고 있다. 매주 목요일 부산 지역 한 운동장에 모여 시합한다. 천 판사도 매주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정군은 "축구를 하고 땀을 흘리는데 '내가 얼마나 창피하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정군은 "다음 달 센터(보호치료시설)를 나가면 아르바이트 하면서 수능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22일 부산 금정구 만사소년 사무실에서 만난 천 판사는 축구팀 아이들과 함께 축구공과 용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천 판사는 하나투어문화재단 후원을 받아 선수 11명과 함께 26일 베트남 냐짱으로 떠난다. 현지 아마추어 축구팀과 시합하고 보육원 봉사활동도 한다.

유재민(22)씨는 원정 선수 중 유일한 20대다.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학창 시절 4년간 축구선수로 뛰었지만, 운동부 폭력과 생활고로 축구를 포기했다. 유씨는 "삶을 비관해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었지만 천 판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을 차리게 됐다"고 했다.

유씨는 현재 직원 37명을 둔 배달대행업체 대표다. 그는 "만사소년FC가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사회성이 생기고 무엇보다 예절을 알게 됐죠." 유씨는 "판사님이 동생들을 돕고 계시는데 (내가) 안 도울 수 있겠느냐"며 지금도 축구팀 행사에 나온다. 이번 베트남 원정도 회사 일까지 미루고 참가한다.

올해로 4년 차인 만사소년FC를 거쳐 간 청소년은 지금까지 100여 명이다. 축구팀 감독인 부산국제금융고 길창호 교사는 "보육원이나 보호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축구가 해방구"라면서 "아이들이 협동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